이런 느슨한 조합은 이분법에 의한 명확한 편 가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특유의 국민성 가운데 하나이다. 세상은 짝 요소로 이루어지고, 이것들은 대립적 관계를 갖기가 쉽다. 흔히 인문학에서 ‘이항대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도 좋은 예이다. 형식은 액자이고 내용은 풍경요소인데, 둘은 자칫 ‘제로섬 관계’에 놓이기 쉽다. 액자를 강조하면 풍경이 죽고, 풍경을 강조하면 액자가 죽는다. 둘이 양보를 안 하고 자기 존재만 고집하면 다툼이 일어나고 한쪽이 죽는다. 이긴 쪽도 승자가 아니다. 풍경 없는 액자는 결국 창고에 처박혀서 손님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한다. 액자 없는 풍경은 공중에 붕 뜬 허상이 된다. 어울려야 둘 다 살 수 있다. 사람살이의 일반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거울작용에서는 액자가 스스로 풍경이 되어버림으로써 제로섬 관계를 극복한다.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앞에서 보았듯이, 서로 부족함을 메워 비로소 완성된 상태를 만든다. 흔히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극히 작은 것일 뿐이라는 교훈을 깨우쳐준다. 액자를 이루는 서까래와 풍경요소를 이루는 처마 선이 사이 좋은 유사성을 가지면서 형식과 내용 사이의 구별을 없앤다. 액자와 풍경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키워준다. 둘은 같이 작동하고 협력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런 장면은 솟을대문을 통해 동네에 내 집의 모습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기능을 갖는다. 집 전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모습을 샘플로 삼아 집밖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너무 많이 보여주자니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있고, 너무 조금만 보여주면 깍쟁이 같다. 둘 사이의 절묘한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것이 문양종합에 의한 소극적 거울작용이다. 바깥에 대한 의사소통과 주변과 어울리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친절과 환영의 의미이다. 농촌사회의 지배세력이 주변의 피지배계급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전형적 태도이다. 한옥이 유교문명 시대 때 반가의 주거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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