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1

임호테프 - 최초의 피라미드를 세우다

임호테프

고대사에는 보통 왕의 이름이 중심에 선다. 정밀한 역사 기록이 적고 집권자의 실질적, 상직적인 영향력이 컸던 시절, 역사는 왕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게 당연했으며 수많은 뛰어난 인물들의 이름은 왕들의 이름에 가려졌다. 그러나 아득히 먼 옛날, 왕에 못지 않은 명성을 얻고 죽어서 신으로까지 숭배된 사람이 있었다. 이집트 제3왕조의 조세르 왕 시절에 살았던 임호테프였다.


이집트, 나일강의 선물
이집트는 문명의 발생이라는 점에서는 메소포타미아보다 다소 늦었다. 하지만 고대 왕국의 수립은 더 빨라서, 기원전 3500년경에 왕국이 나타나고 3100년경에는 상, 하 이집트가 통일되어 고대 이집트의 기틀이 잡혔다. 북아프리카가 건조해지며 나일 강 유역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나일 강의 범람을 적절히 활용할 대규모의 관개 작업이 절실해져서 일찌감치 강력한 왕권이 수립될 수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많은 인원을 동원해 효율적으로 작업하려면 강력한 중앙권력과 합리적인 계획,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이집트를 정복하여 제1왕조를 세운 ‘최초의 파라오’는 메네스인데,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인물이라 실존성이 불분명하다. 나르메르라는 이름이라고도 하고, 나르메르는 후대의 왕이라고도 하며, 호루스 신에게서 직접 왕권을 물려받아 62년을 다스렸는데 하마 또는 물소에게 죽었다고 한다. 이후 7, 8명의 파라오를 거쳐 기원전 2890년경부터 2686년까지 제2왕조가, 그 뒤로는 제3왕조가 이어갔다.


사나크테가 시작한 제3왕조는 이집트 역사에서 “고왕국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된다. 파라오의 왕권이 강대해지고 국력도 크게 떨친 시대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바로 피라미드인데, 최초의 피라미드는 제3왕조의 2대 파라오(조세르가 초대 파라오이며, 사나크테는 후대의 파라오라는 설도 있다) 조세르 시대에 재상 임호테프가 건설했다.


수많은 재능의 소유자  
조세르 왕의 상.

임호테프’는 ‘평화롭게 다가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고관이던 카네페르의 아들이며 조세르 왕의 친구였다고 하나, 왕자였다는 설도 있다. 그의 이름은 조세르왕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조세르 상에 새겨져 있는데, “파라오의 고문, 하이집트 왕국의 회계, 상이집트 왕국의 제2인자, 위대한 재상, 귀족, 헬리오폴리스의 대신관, 건설자, 목수, 조각가, 도예가”라고 임호테프를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임호테프의 생전에 새겨졌을 이 문구를 보더라도 그가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재상’이라는 직위는 사실상 임호테프가 ‘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는 왕실 살림살이를 돌보는 소규모의 신하집단만 있었으나 고왕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대규모의 관료집단이 이루어지고, 그들을 총괄하는 직위인 재상이 신설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헬리오폴리스의 대신관으로 태양신 라를 받드는 제사를 주재했다. 라의 숭배도 고왕국 시대의 특징으로, 그때까지는 호루스나 세트가 주로 숭배받았었다. 그야말로 파라오를 제외하면 이집트 최고의 권력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조세르 상의 명문에도 나오듯 그는 단지 유능한 관료, 정치가만이 아니라 천재적인 기예가였던 듯하며, 기원후 3세기경의 이집트 역사가인 마네토에 따르면 임호테프는 “신의 경지에 이른 의술로 널리 명성을 얻었고,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천문학자, 수학자, 철학자, 연금술사였다는 말도 있다. 파피루스를 발명한 사람도 그라고 한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이야기가 부풀려진 것일지 모르지만, 살아서 널리 숭배받고, 죽어서 전설로 남을 만큼 임호테프의 실제 재능이 뛰어났음은 분명해 보인다.


최초의 피라미드를 세우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오늘날까지 임호테프의 이름을 높여 주는 기념물은 바로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다. 사카라에 있는 피라미드는 흔히 알려진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기자 피라미드)와는 달리 장방형의 석조물을 층층이 쌓아올린 계단식 피라미드인데, 이는 이집트 피라미드의 원형이며 층 사이의 공간을 메워 사각뿔 모양으로 만든 것이 기자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다. 조세르 피라미드의 밑변은 109×125미터, 높이는 62미터에 달한다. 그때까지의 파라오들은 마스타바라고 불리는 높이 10미터 정도의 장방형 무덤에 묻혔음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이었을지, 조세르와 임호테프가 얼마나 큰 권력을 누렸을지 알 수 있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본래는 평범한 마스타바였으나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여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는 추정이 있고, 처음부터 그런 형태로 설계되었다는 설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신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본다. 임호테프가 그토록 놀라운 재주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메소포타미아의 선진 문물을 접한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조세르 피라미드.<출처: Wikipedia>


아무튼 조세르 피라미드는 석조건축 기술에서도 신기원을 이루었다. 그때까지 이집트에서 돌은 건축에 부수적으로만 쓰였고 나무와 진흙이 주요 건축재였으나, 조세르 피라미드에서 비로소 돌을 깎고, 운반하고, 쌓아올리는 기술이 본격적으로 동원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기에 조세르 피라미드는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대규모 석조건축’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페루의 카랄 피라미드가 이보다 앞선다(기원전 3000년경)는 주장이 나왔다.

조세르 피라미드의 미학적, 정치적인 의미 역시 크다. 산처럼 우뚝 솟은 피라미드는 멀리서도 보이며, 절로 외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것은 파라오가 하늘로 올라 신이 되기 위한 계단이라고도 한다. 신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널리 온 땅을 다스리는 지배자, 그가 파라오이며, 그 이상을 더할 나위 없이 구현하는 실체가 피라미드였다.

임호테프는 이 신성한 건축물에 개인 서명을 남긴 것으로도 보인다. “네켄의 목수”라는 것인데, 임호테프의 별명으로 알려진 이 서명의 의미는 이 피라미드가 조세르의 왕권을 나타내는 상징물인 동시에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작품이기도 함을 암시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임호테프는 조세르 피라미드 말고도 두어 곳의 건축물을 건설했고, 거기서 쓰인 원기둥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서 나중에 고대 그리스의 신전건축에도 응용되었다.


“신이 된 남자”
워낙 오래 전의 인물이다 보니, 그가 어떻게 태어나 어떤 가정을 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무덤조차 사카라 어딘가에 있다고 전해지고 있을 뿐, 현대 고고학자들이 필사적으로 찾고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처럼 신비에 싸인 인물이기에 더욱 신화로 남지 않았을까. 아니, 그를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인간 임호테프’의 정보가 사라지고 잊혀져 버린 게 아닐까.

불세출의 건축가이며 모든 학문의 권위자인 그를 지혜의 신인 토트와 동일시하는 믿음이 자연스레 생겼으며, 사카라를 찾는 숭배자들은 어딘가에 있을 그의 무덤에 토트 신의 상징인 따오기의 미라를 바치며 경의를 표시했다. 크눔 신이나 프타 신이 그의 진짜 아버지이며, 어머니는 세크메트 여신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토트(왼쪽)와 동일시되는 임호테프(가운데)를 나타낸 그림.

2천 4백년 뒤에 이집트를 지배한 그리스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도 임호테프 숭배는 사라지지 않아서, 그리스의 의술과 학문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와 동일시되었다. 당시 이집트의 고문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던 학자가 일을 게을리하자 임호테프가 꿈에 나타나 꾸짖었고, 이후 번역이 빠르게 완성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오늘날 생각해 보면 정말 그토록 많은 재능이 한 사람에게 갖춰져 있었을지 믿기 어렵다. 건축이나 조각 역시 실행은 여러 전문가들이 하고, 임호테프는 다만 총책임자로서 영예를 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이 아닌 인간이 왕과 거의 동격으로 추앙받고, 그의 권력이 아니라 지혜와 재능으로 길이 숭배받는 일은 고대에서는 실로 보기 드문 경우였다. 조세르 피라미드가 우뚝 서 있는 한, 아니면 그 후까지도, 임호테프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