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도 있다. 겨울에 추운 것을 감수하고라도 굳이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것은 불이사상 때문이다. 공간의 안팎을 다른 것으로 분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외기와의 단절을 최소화해서 바깥을 항상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방 하나가 가급적 외기를 많이 면하게 하고 창문을 여러 곳에 낸다. 한 면에 창문이 두 개 이상 나기도 한다. 채의 끄트머리에 있는 방은 세 면이 외기를 면하면서 그 세 면에 모두 창문이 난다. 심한 경우 방 하나에 문이 다섯 개, 여섯 개씩 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이 모두 열리면서 바로 바깥과 통한다는 점이다. 산업화 이후 대표주자가 된 전면유리를 훨씬 능가한다. 전면유리는 시각적으로는 모두 열려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하나만 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이런 특징이 또 다른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방은 아늑하고 실내다워야지 한(寒) 데에 텐트 하나 친 정도여서야 어디 그게 방이냐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이 시골 진짜 한옥에서 자게 되면 첫날밤은 대부분 신경이 곤두서서 뜬눈으로 보내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뒤집어 보면 그만큼 바깥과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아서 항상 바깥과 함께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는 뜻이 된다. 소극적 의미의 ‘친 자연’이다. 방안 어느 곳에서든지 다섯 걸음 이내에 바깥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한옥만의 이런 특징이 공간에서는 중첩으로, 풍경작용에서는 ‘액자 속 액자’라는 독특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자체만으로도 불이사상이라는 당시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한 것일진대, 그렇게 집을 짓다 보니 거기에 따른 여러 가지 조형작용과 심미작용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신적 가치에 따라 집을 지었을 때 나타나는 좋은 점이며, 전통건축이 우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능과 효율과 돈 논리에 따라서 집을 짓는 요즘은 접할 수 없는 문화적 깊이이다. 바깥 대상과 안쪽 나 사이의 관계를 편 가름하지 않고 소통 통로를 다원화하려는 철학이 집에 녹아 든 결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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