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 2011

중첩 - 두 겹으로 겹치는 창

창이 두 겹 겹치는 ‘중첩’ 
한옥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창문 속에 또 창문이 있고 그 밖에 풍경이 보이는 경우이다. 이른바 ‘액자 속 액자’이다. 액자가 두 개 이상이라는 뜻이다. 풍경요소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고 이것을 여러 개의 액자가 앞뒤로 거리 차이를 가지며 겹쳐서 담아낸다. ‘풍경 속 풍경’이라고도 한다. 첫 번째 창문 속 큰 장면이 첫 번째 풍경이고 다시 그 속에 두 번째 창문이 들어가면서 두 번째 풍경을 담는다. 웬만큼 큰 한옥이면 집 전체에서 이런 장면이 몇 개는 만들어진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의도된 느낌이 강하다. 마주보거나 앞뒤로 늘어서는 등 창문들 사이의 관계나 풍경요소의 위치 등이 ‘액자 속 액자’를 염두에 두고 짠 것 같다.

이런 특이한 장면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중첩’이라는 한옥의 공간 구조에 있다. 한옥은 공간 켜가 많다. 어려운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방의 앞뒤로 마당이 있고 마당 건너 다른 방이 있으며 다시 문과 담 너머 다른 채가 있는 한옥의 구조를 생각하면 된다. 한 마디로 복잡하다는 것이고 이는 곧 집이 여러 겹 겹친다는 뜻인데, 이를 지칭하는 공간미학 개념이 중첩이라는 것이다. 그냥 겹치게 하긴 쉬운데 그러다간 혼란스러워지기만 할 뿐, 이것이 일정한 공간형식을 갖춰서 심미성을 갖도록 정리한 개념이 ‘중첩’이다. 공간형식을 기준으로 하면 채 분리와 꺾임이 많고 그 사이에 마당을 끼워 넣은 구성에서 기인한다.

중첩은 한옥만의 특징은 아니고 한국다운 국민성 전반에 깔린 특징이다. 사물을 단정적으로 둘로 가르지 않고 중간적 태도를 취하는 상대주의 국민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중첩은 의복, 음식, 대화법, 사람 사이의 관계 등 여러 곳에 나타난다. 중첩은 풍경작용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쪽 문에서 반대편 문을 통해 건너편 장면을 보는 경우이다. 내 앞에 액자가 하나 있고 그 속에 방의 공간 켜를 지나 반대편에 액자가 하나 더 들어있다. 다시 그 속에 마지막으로 풍경이 담긴다. 공간 중첩이 풍경 중첩으로 형식화되는 순간이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창문과 건너편 풍경 모습이 짜 맞춘 듯 일직선 축 위에 놓이면서 잘 들어맞는다. 마치 누군가 액자 속에 그림을 정성 들여 담아 걸어놓은 것 같은 장면이다. 중첩을 괜히 중첩시킨 것이 아니라 ‘풍경 속 풍경’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오죽헌 이쪽 문 속에 있고 그 속에 방이 있으며 맞은편이 문이 하나 더 있고 마지막으로 그 속에 풍경이 담긴다.


한옥의 백미 ‘액자 속 액자’
대청 뒷마당에서 대청 뒷문을 열고 안마당을 바라보는 경우도 ‘액자 속 액자’가 일어난다. 내가 서 있는 쪽에 대청 뒷면의 창이 하나 나고 그 속에 대청이라는 공간 켜가 하나 있으며 반대편에 대청 앞 기둥과 지붕이 한정하는 액자가 하나 더 있다. 이 두 번째 액자 속에 들어오는 요소가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안 행랑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에 중문이 들어서면 중첩이 한 번 더 계속된다. 중문 자체가 또 하나의 액자가 되면서 모두 세 겹의 액자가 겹치게 된다. 한옥의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한국 현대 건축가들이 현대적으로 재생해내고 싶어 했던 공간 구조이다.

‘액자 속 액자’가 일어나는 또 다른 장소로 안채의 부엌과 광을 들 수 있다. 위치로 보면 안채에서 뻗어 나온 팔의 양쪽 끄트머리 부분이다. 안채는 전체 형태가 ‘ㄷ’자 형이나 ‘ㅁ’형이 대부분이라서 대청에서 양 옆으로 뻗어 나온 두 팔이 만들어진다. 이곳에는 자녀들의 방과 함께 부엌과 광이 들어간다. 부엌과 광은 대청 쪽에 가깝게 붙기도 하지만 대청에서 먼 팔의 끄트머리에 들어가기도 한다. 집이 큰 경우 끄트머리 두 부분이 모두 광이나 부엌으로 사용된다. 부엌과 광은 기능은 다르지만 공간구조는 비슷한데, 앞뒤로 벽 전체를 거의 다 차지하는 큰 나무 문이 나는 형식이다. 흔히 ‘광 문’이라고 부르는 문인데, 부엌에도 같은 문을 단다.


충효당 사랑채 대청 뒤에서 창문을 통해 앞을 보면 ‘액자 속 액자’가 일어난다. 뒷마당은 못 쓰는 물건이나 재어 놓는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풍경작용을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김동수 고택 광 뒷마당에서 네 개의 문을 모두 열고 건너편 
광 쪽을 바라보면 액자가 네 개 겹치는 풍경 중첩이 일어난다.


양쪽 팔 끄트머리에 이런 공간이 하나씩 들어있을 경우 참으로 풍부한 ‘액자 속 액자’의 풍경놀이를 즐길 수 있다. 모두 네 개의 문이 일렬로 늘어서는 형식이 된다. 네 개의 문을 다 연 다음 부엌이나 광 뒤쪽 마당에서 안을 통해 건너편 부엌이나 광 쪽을 바라다보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액자가 네 개나 겹치게 된다. 꼬챙이에 산적을 꿴 형국이다. 너무 과하다 싶으면 안으로 들어가서 건너다보면 액자가 세 개 겹친다. 발걸음을 좀 더 옮겨 안마당으로 나와 광 문 앞에 서서 부엌이나 광을 바라보면 액자가 두 개가 된다. 연차적으로 ‘줌 인(zoom in)'이 일어나는 영화기법이 일어나는 곳이다. 한옥의 또 다른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여담이지만, 한옥의 백미에는 사랑채의 활짝 편 지붕처럼 노골적이고 과시적인 것도 있지만, 앞에 얘기한 대청 뒷면이나 이곳 부엌처럼 공간의 중첩이 극대화되는 은근한 곳도 있다.


한옥만의 독특한 공간 구조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현상
풍경 중첩 혹은 ‘액자 속 액자’는 한옥만의 독특한 공간 구조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현상이다. 방의 앞뒤 양면에 창을 내는 구조이다. 방의 한쪽은 복도로 막히면서 문이 나는 것이 전 세계 주택의 공통적 구성인데, 한옥의 방만 유독 두 면, 심지어 세 면이 외기와 면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방안에서 어느 문을 열어도 바로 바깥이다. 이 문제는 확장하면 한옥의 장단점과 연관이 깊다. 가장 큰 단점은 외풍이 세고 겨울에 춥다는 점이다. 열효율 면에서는 분명 불리하다. 아파트에서 가장 따뜻한 방은 집 한 가운데 들어있어서 창이 하나도 없는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뒤집어 생각하면 된다. 비바람에 노출되기 때문에 마모가 많이 일어나 유지관리와 보수에 잔손이 많이 간다는 점도 불리할 수 있다. 흔히 한옥이 불편하다고 하는 내용들이다.

장점도 있다. 겨울에 추운 것을 감수하고라도 굳이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것은 불이사상 때문이다. 공간의 안팎을 다른 것으로 분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외기와의 단절을 최소화해서 바깥을 항상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방 하나가 가급적 외기를 많이 면하게 하고 창문을 여러 곳에 낸다. 한 면에 창문이 두 개 이상 나기도 한다. 채의 끄트머리에 있는 방은 세 면이 외기를 면하면서 그 세 면에 모두 창문이 난다. 심한 경우 방 하나에 문이 다섯 개, 여섯 개씩 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이 모두 열리면서 바로 바깥과 통한다는 점이다. 산업화 이후 대표주자가 된 전면유리를 훨씬 능가한다. 전면유리는 시각적으로는 모두 열려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하나만 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이런 특징이 또 다른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방은 아늑하고 실내다워야지 한(寒) 데에 텐트 하나 친 정도여서야 어디 그게 방이냐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이 시골 진짜 한옥에서 자게 되면 첫날밤은 대부분 신경이 곤두서서 뜬눈으로 보내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뒤집어 보면 그만큼 바깥과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아서 항상 바깥과 함께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는 뜻이 된다. 소극적 의미의 ‘친 자연’이다. 방안 어느 곳에서든지 다섯 걸음 이내에 바깥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한옥만의 이런 특징이 공간에서는 중첩으로, 풍경작용에서는 ‘액자 속 액자’라는 독특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자체만으로도 불이사상이라는 당시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한 것일진대, 그렇게 집을 짓다 보니 거기에 따른 여러 가지 조형작용과 심미작용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신적 가치에 따라 집을 지었을 때 나타나는 좋은 점이며, 전통건축이 우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능과 효율과 돈 논리에 따라서 집을 짓는 요즘은 접할 수 없는 문화적 깊이이다. 바깥 대상과 안쪽 나 사이의 관계를 편 가름하지 않고 소통 통로를 다원화하려는 철학이 집에 녹아 든 결과이다.

운현궁 이노당 앞뒤 창문과 건너편 집 모습이 일직선에 놓이며 ‘액자 속 액자’를 만드는 모습은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다. 외풍이 센 단점을 감수하고서 풍경작용을 선택한 이유이다.

거울작용 - 거울의 유사성

거울로 비춰 본 듯, 거울작용
한옥을 다니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주로 문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볼 때인데, 비슷한 장면이 앞뒤로 반복되는 경우이다. 거울에 비춰본 것처럼 닮았다. 액자의 모양새와 풍경요소의 모양새가 닮은 경우로 ‘거울작용’이라 부를 수 있다. 넓게 보면 중첩 현상의 하나이다. 중첩에는 공간에 의한 액자중첩 이외에 요소중첩도 있게 되는데, 이때 액자와 풍경요소 사이에 닮은꼴이 어느 선 이상을 넘어서면 거울작용이 된다. 주로 문을 통한 풍경작용에서 많이 일어난다.

솟을대문이나 중문 등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면 종종 문과 닮은 모습이 액자 속에서 반복되는 신기한 장면이 나타난다. 닮은 요소는 지붕인 경우가 제일 많다. 문에 달린 지붕이 풍경요소에서 반복되는 식이다. 한옥에서는 기와 얹은 지붕이 ‘약방의 감초’처럼 온갖 곳에 다 들어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문과 담 위에까지 약식으로 소품화한 기와지붕을 얹는데, 이것이 액자형식을 이루면서 풍경요소의 진짜 지붕과 겹쳐질 경우 거울작용이 일어난다. 기와의 역할이 중요하다. 들쭉날쭉 시각적 자극이 강한 부재이면서 작은 크기가 가지런히 반복되기 때문에 조금만 반복해도 닮은꼴이 강조되기 쉽다.

문에서 본 지붕이 문 속 풍경요소에서 똑같이 반복된다. 액자를 이루는 문의 지붕이 마치 액자 속에서 증식해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때 증식과 반복을 유발하는 매체를 거울의 반사작용으로 설정한 개념이 거울작용이다. 실제 모습을 보더라도 거울작용이 일어나는 장면에서는 마치 문을 거울로 비춰서 문 속에 하나 더 넣어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문이 담을 끼고 있고 문 속 풍경작용이 같은 건축형식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또 다른 거울작용의 좋은 예이다. 집이 커서 행랑채가 두 겹으로 반복될 때, 솟을대문 양옆에 늘어선 바깥쪽 행랑채와 안으로 한 번 들어온 곳에 있는 두 번째 행랑채가 문을 매개로 앞뒤로 반복되면서 중첩되는 경우이다. 이때에도 액자와 풍경요소가 빼다 박은 듯 닮기가 쉽다. 기와지붕 단독으로 일어나는 경우보다 시각적 자극은 약하지만 좀 더 갖춰진 건축형식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그만큼 안정적이고 좀 더 건축답다. ‘담-벽-지붕’으로 이어지는 수평 요소들의 높낮이가 앞뒤로 비슷하게 맞을 경우 마치 하나의 장면이 중간에 조금 어긋난 정도로만 보이면서 거울작용은 감쪽같다. 문에 달린 지붕의 서까래와 풍경요소 속 기와지붕의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부재 종류는 다르지만 시각적으로 유사성을 가지면서 거울작용을 돕는다.

충효당 지붕을 얹은 액자 속 풍경요소 역시 지붕을 얹고 있다. 완전 대칭은 아니지만 액자를 거울에 비춰본 것 같은 유사성을 갖는다.


거울작용의 의미
거울작용은 공간 켜를 여러 겹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벽을 거울로 처리하는 트릭 기법에서 많이 나타난다. 서양건축에서도 복합공간이 새롭게 등장하던 1960~70년대에 벽에 거울을 바르는 다소 유치한 기법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일부 설치미술 작가들은 거울을 이용해서 공간에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한옥에서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그것도 거울 같은 직접적 소품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건축 구성만으로 은유적으로 거울작용을 만들어 즐겼다. 게다가 트릭이 아닌 실제 현실이었다.


창덕궁 연경당 담과 지붕과 창의 위치가 수평이 어긋나기는 하지만 몽타주 기법으로 생각하면 둘은 거울을 보듯 닮은 장면이 된다.


거울작용은 ‘창과 풍경의 하나됨’이 더 적극적으로 발전한 경우이다. 궁극적 목적은 어울림의 미학이다. 액자는 나, 즉 주체이고 풍경은 너, 즉 객체이자 대상이다. 나와 너 사이에는 나에서 너로 향하는 일방통행식 관계가 생기는 것이 통상적이다. 나는 나의 주관과 가치관에 의해 객체와 대상, 즉 주변을 정리하고 정의한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런데 거꾸로 너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에는 내가 객체요 대상이 된다. 너와 내가 이렇듯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고수하면 반드시 다툼과 대립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서양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나의 능력과 의지에 의해 주변을 정리하고 다스리려는 입장을 갖는다. 반면 한옥의 거울작용에서는 나를 너와 닮게 만들어서 다툼과 대립의 소지를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각자의 존재를 충분히 지키면서 서로 닮는 쌍방향 교류가 요점이다. 생활 속 상식으로 환원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쯤에 해당된다.

나와 너, 주체와 객체, 액자와 풍경 사이에 분별이 없다. 분별이 없으니 우열도 없다. 본디 우열이란 분별하려는 부질없는 욕심에서 발생한다. 내가 남과 다르고 싶은 마음은 백이면 백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심으로 결론난다. 거울작용에는 이런 것이 없다. 서로 상대방을 열심히 닮아 무심하게 어울리려는 평등한 통합을 지향한다. 이런 관계에는 사실 친소를 따지는 것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둘이 친해야 가능한 일이다.


‘문양종합’에 의한 소극적 거울작용

거울작용의 또 다른 좋은 예로 ‘문양 종합’ 혹은 ‘부재 종합’이란 것이 있다. 소극적 거울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액자 속 풍경요소가 집이면서 몸통만 보이고 지붕은 살짝 암시만 하는 경우이다. 지붕이 빠진 불완전한 모습이다. 지붕은 액자에 해당되는 대문이 제공한다. 대문은 지붕만 덩그러니 얹어서 역시 불완전한 모습이다. 이 둘, 액자의 지붕과 풍경요소의 몸통을 합하면 한옥 한 채의 완전한 모습을 보게 된다. 거리 차이가 있어서 모서리가 그냥 집 한 채를 보는 것만큼 완벽하게 맞진 않지만 상상으로 바느질을 해서 둘을 이어 붙이면 한 채의 한옥이 훌륭하게 완성이 된다. 약한 의미의 몽타주 기법이기도 하다. 각자는 불완전한데, 서로 합하니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이른다.


수애당 거울작용의 요체는 서로 닮자는 것이다. 분별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과 대립을 피해 어울림을 추구한다.
귀봉종택 액자의 기와와 담이 풍경요소의 벽과 문과 퇴와 댓
돌과 합해지면 비로소 한옥의 기본구성이 완성된다.


이런 느슨한 조합은 이분법에 의한 명확한 편 가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특유의 국민성 가운데 하나이다. 세상은 짝 요소로 이루어지고, 이것들은 대립적 관계를 갖기가 쉽다. 흔히 인문학에서 ‘이항대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도 좋은 예이다. 형식은 액자이고 내용은 풍경요소인데, 둘은 자칫 ‘제로섬 관계’에 놓이기 쉽다. 액자를 강조하면 풍경이 죽고, 풍경을 강조하면 액자가 죽는다. 둘이 양보를 안 하고 자기 존재만 고집하면 다툼이 일어나고 한쪽이 죽는다. 이긴 쪽도 승자가 아니다. 풍경 없는 액자는 결국 창고에 처박혀서 손님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한다. 액자 없는 풍경은 공중에 붕 뜬 허상이 된다. 어울려야 둘 다 살 수 있다. 사람살이의 일반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거울작용에서는 액자가 스스로 풍경이 되어버림으로써 제로섬 관계를 극복한다.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앞에서 보았듯이, 서로 부족함을 메워 비로소 완성된 상태를 만든다. 흔히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극히 작은 것일 뿐이라는 교훈을 깨우쳐준다. 액자를 이루는 서까래와 풍경요소를 이루는 처마 선이 사이 좋은 유사성을 가지면서 형식과 내용 사이의 구별을 없앤다. 액자와 풍경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키워준다. 둘은 같이 작동하고 협력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런 장면은 솟을대문을 통해 동네에 내 집의 모습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기능을 갖는다. 집 전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모습을 샘플로 삼아 집밖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너무 많이 보여주자니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있고, 너무 조금만 보여주면 깍쟁이 같다. 둘 사이의 절묘한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것이 문양종합에 의한 소극적 거울작용이다. 바깥에 대한 의사소통과 주변과 어울리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친절과 환영의 의미이다. 농촌사회의 지배세력이 주변의 피지배계급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전형적 태도이다. 한옥이 유교문명 시대 때 반가의 주거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몽타주 - 풍경을 합치다

병풍, 조각 난 풍경을 다시 합하기
한옥에는 창이 많지만 전면유리는 아니다. 막힘과 뚫림이 적절하게 교대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액자가 되는 곳은 뚫린 부분이니, 이는 액자가 여러 개 늘어서게 된다는 뜻이 된다. 뚫린 부분은 위치, 간격, 크기, 형태 등이 규칙적이기도 하고 불규칙적이기도 하다. 어쨌든 풍경작용은 여럿으로 조각난다. 대청 뒷면은 보통 두 장의 큰 창으로 이루어진다. 앞면의 기둥 열도 얼개로 짜인 개방 창으로 볼 경우 역시 창을 만든다. 기둥이 세 개면 창이 두 개, 네 개면 창이 세 개인 식이다. 방의 한쪽 면이 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창은 보통 두 개가 나지만 세 개 이상 나는 수도 있다. 창이 여럿인 장소 앞에 서서 조각난 작은 풍경들을 한 화면 안에 넣어서 볼 경우, 이것들은 다시 합해져 하나의 큰 풍경을 이룬다. 연작, 즉 병풍 개념이다.

회화에서의 병풍이라는 형식을 건축으로 구현한 한옥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창의 개수는 곧 병풍의 폭의 개수가 된다. 두 개면 두 폭 병풍, 세 개면 세 폭 병풍이다. 병풍은 좌우로 작은 풍경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앞뒤로 이어지는 중첩과는 또 다른 공간구도이다. 합해 보면, 종횡의 양 방향으로 연작이 일어나는 것이 된다. 그만큼 한옥의 공간구도가 풍부하고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맹사성 고택 액자가 다르기 때문에 두 장의 풍경도 다르게 나타나지만 풍경요소의 연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병풍을 이룬다. ‘비대칭 병풍’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한옥에서 병풍을 만들어내는 기준은 분산성과 규칙성이다. 상반되는 조건인 두 기준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병풍 작용은 풍경요소가 작은 것 여러 개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분산성을 기본적 특징으로 갖는다. 너무 분산적이 되면 병풍으로 남기 어렵다. 분산성은 풍경요소들이 작은 장면들로 나누어지는 선까지 허용된다. 한 번 나눠진 다음에는 반대로 일정한 규칙성을 가져야 서로 어울려 하나의 큰 연작을 만들 수 있다. 규칙성의 조건은 연속성과 유사성이다. 너무 많이 떨어져도 안 되고 너무 달라도 안 된다.

맹사성 고택주석1 대청 뒷면을 보면 창 두 장이 위치는 동일한데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오른쪽 큰 창은 문짝이 반쯤 열려있다. 분산성도 느껴지나 전체 장면은 아직 병풍에 머문다. 좌우가 다른 비대칭 병풍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창의 개수도 중요하다. 두 개면 병풍으로 느끼기에는 좀 부족하고 세 개면 안정적이다. 네 개면 확실하지만 한옥에서 한 번에 창이 네 개 연달아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 개인 경우는 많진 않지만 제법 있는 편이고 두 개가 제일 많다. 대청 앞면 기둥 열이 만드는 액자도 마찬가지다. 두 칸이 제일 많고 세 칸인 경우도 있다. 대청 양 옆 방 앞에 퇴가 나고 기둥이 세워지면 대청 위에 장소를 잘 잡을 경우 창이 네 개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몽타주, 조각 요소들이 어울려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다
어쨌든 두 개 이상의 조각 난 작은 풍경이 합해져 전체 풍경을 만들게 된다. 작은 풍경들 사이의 유사성은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이다. 많이 다르면 시각적으로는 합해질지 모르나 내용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 채 단순 병렬에 머문다. 관가정 행랑채를 보면 완전히 다른 두 장면이 나란히 병렬되어 있다. 왼쪽은 집의 일부분인 자경이고 오른쪽은 자연물인 차경이다. 두 장면은 이질성이 커서 둘을 합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 창의 액자형식에 분산성이 없기 때문에 콜라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단순 병렬로서 병풍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자연요소와 인공요소 사이의 병렬을 통한 종합화 작용이다.


관가정 액자는 같지만 풍경요소가 다르다. 풍경작용의 형식은 단순병렬인데, 이것을 대립으로 볼지 어울림으로 볼지는 해석의 문제로 넘어간다.


유사성을 가지면 이어 붙여 큰 스토리를 꾸밀 수 있다. 몽타주이다. 조각 난 풍경요소를 하나씩만 보면 집의 일부분만 보인다.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같은 집의 일부분인 점에서 유사성도 크다. 이런 요소들이 조각 난 상태로 병렬되어 있다. 이런 장면을 보면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조각 난 부분의 나머지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복원하게 된다. 완성된 큰 전체를 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한옥에서 몽타주는 반드시 창이 여럿으로 조각 나야 되는 것은 아니다. 액자가 하나이더라도 그 속에 담기는 풍경요소가 조각 나 있고, 이것이 관찰자의 머릿속에 전체 모습에 대한 상상작용을 유발하면 몽타주가 된다. 오죽헌을 보면, 왼쪽 조각은 지붕, 회벽, 기둥과 보 등을, 오른쪽 조각은 가지런한 서까래를 각각 조형 요소로 내놓는다. 왼쪽 조각에서는 지붕 끄트머리를 보고 나머지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기둥과 보가 지나가며 분할하는 회벽을 보고 벽체 나머지 부분에 난 창 등 역시 몸통의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오른쪽 조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을 모두 모아 이어 붙이면 집의 전모를 추측에 의해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몽타주 작용이다.


몽타주, 집과 친해지기 위해 기교를 부리다
그렇다면 왜 한옥은 몽타주 작용이 일어나도록 지었을까. 병풍 작용부터 먼저 생각해보자. 회화에서 병풍은 기본적으로 보관과 이동의 편리함 때문에 만든 것이다. 큰 그림을 접어서 보관하기 편하고 누각에서 연회가 벌어질 때 들고 가서 뒤 배경으로 펼쳐놓기에 편하다. 한옥에서는 이보다 좀 더 깊은 뜻이 있다. 다양성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조형의식과 국민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정여창 고택 두 장의 풍경이 끊긴 뒤 이어진다. 중간에 가려진 부분에 대해 상상작용을 유발하면서 몽타주 작용이 일어난다.
  

큰 것 하나보다는 작은 것 여러 개로 나눈 뒤 그것들 사이의 합종연횡에서 나오는 다양한 관계를 즐기는 국민성이다. 이것이 자칫 혼란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칙성을 담보한 것이 한옥에서의 병풍 작용이다. 한국 특유의 균형감각을 잘 보여주는 현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용이라는 동양의 미덕을 바탕에 갖는다.
  
중용의 균형감각은 집과 사람 사이에 더 적극적으로 적용된다. 집과 친해지기 위해 몽타주라는 기교적 조형형식을 가했다는 것이 해답이다. 집이 단독으로 통째로 존재하면 지나치게 딱딱하고 형식적이 된다. 주체로서의 사람과 객체로서의 주변 환경으로 양분되면서 이항대립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집과 친해지거나 하나가 되지 못하고 겨루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객체화된 대상에 대해서는 그것이 사람이건 자연이건 집이건 상관없이 겨루어 이기고 싶어 한다. 본능이기 때문이다. 생존본능으로서의 경쟁심이나 우월본능이다.

사람과 집 사이에 경쟁관계가 형성되면 일상생활이 피곤해진다. 사람은 집에 욕심을 싣는다. 집과 경쟁해서 이긴다는 것은 결국 집을 사람에게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객체와 싸워 이겨 굴복시키는 목적은 하나,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지배욕, 물욕, 권력욕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집도 이런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전제문명 시대에는 집이 사람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 버는 수단이 된다. 집은 온전한 개체가 되지 못하고 끝까지 수단과 도구로만 남는다.

집과 사람은 대등한 영향관계에 놓여있다. 사람들은 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작용도 고스란히 받게 되어 있다. 집을 잘 대해주면 집으로부터 복을 되돌려 받지만 잘못 대하면 그 대가를 치러 저주를 받아 불행해진다. 너무 쉽고 당연한, 그렇기에 지엄한 세상의 기초 이치이다. 집에 정성을 쏟고 집과 친해져서 한 몸 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면 집은 사람에게 더할 수 없이 편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안정된 심리상태를 만들어준다. 몽타주는 집에 다양한 놀이기능을 부여해서 집과 친해지고 하나가 되기 위한 고도의 주거 전략인 것이다.

 
오죽헌 액자는 하나인데 풍경요소가 둘로 나눠져 몽타주 작용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보면 좌우 양쪽 옆의 나머지 모습을 상상으로 복원시켜 이어 붙여 하나의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싶어진다.

한국의 탑 - 석탑, 석가탑

우리는 지금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어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할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 외국인과 함께 절에 가면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탑입니다. 이런 경우에 외국인에게 이 탑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우리 한국인들은 불교문화에 익숙한 나머지 탑이 무엇인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워낙 자주 보는 것이라 탑이 어떤 사물인지 의문을 갖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외국인 친구에게 탑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탑은 원래 붓다의 유골을 보관하는 ‘붓다의 무덤’
탑은 한마디로 말해 ‘붓다의 무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탑의 양식은 붓다 이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붓다가 타계하고 화장을 한 뒤 남은 사리, 즉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것이 바로 탑인 것입니다. 사람의 사후 그 유골을 보관하는 곳을 보통 무덤이라 하니 붓다의 유골을 보관하는 탑을 붓다의 무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탑에는 붓다의 유골만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한국만 해도 탑이 엄청 많지요? 붓다의 유골이 얼마나 많기에 그 많은 탑에 다 모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 탑은 실제로 붓다의 사리를 모셨다기보다는 붓다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바뀌게 됩니다. 탑돌이 등을 하면서 탑을 예배하는 것은 그런 생각 끝에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들도 타계 후 화장하면 사리가 나온다고 하지요? 스님들의 사리를 보관하는 곳은 탑이 아니라 부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탑은 대개 절 안에 있지만 부도는 절의 뒤쪽이나 바로 바깥쪽에 모셔놓습니다.


인도의 수트파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탑이 되었다
탑이란 인도 말인 수트파에서 온 것입니다. 수트파가 중국에서 탑파(塔婆)로 음역되었고 이것이 줄여져 탑이 된 것입니다. 한국 탑은 인도부터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발달했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한국 탑의 정수는 석가탑인데, 그것이 완성되는 모습을 아주 간단하게 보도록 하지요. 석가탑과 더불어 동일 사찰 내에 있는 다보탑은 한국 탑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경우에 속합니다. 석가탑이 그 뒤 한국 탑의 전형(model)이 되는 것에 비해, 다보탑의 경우에는 다시는 그런 양식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보탑은 그 양식이 인도의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한국의 토양에는 정착되지 않습니다.

인도의 산치에 있는 전탑.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chromatic_aberration/


그에 비해 석가탑은 그 양식이 중국에서 온 것으로, 한마디로 중국식 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불교의 탑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도의 산치에 있는 큰 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탑은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을 하고 있지요. 이 탑은 그 뒤 계속해서 변형·발전하는데, 그 양상은 아주 복잡한지라 대부분 생략하고 중국 이후의 시기만 보기로 하겠습니다. 한국 탑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중국 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도 탑의 모습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한국 탑에서도 인도 탑의 모습이 보입니다. 인도 탑의 모습은 아주 재밌게도 하단의 그림에서처럼 한국 탑의 맨 꼭대기에 남아 있답니다. 이것을 상륜부(相輪部)라고 부르는데, 여기를 자세히 보면 사발을 엎어놓은 부분이 있는 등 인도 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도 탑의 모습은 한국 탑의 맨 꼭대기에 남아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도 목탑과 전탑이 세워져
그러나 이 부분을 제외하고 밑부분은 중국 고유의 양식으로 대체됩니다. 중국인들은 탑을 붓다의 거주처로 생각해 자신들이 사는 집의 형태로 탑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석가탑 같은 탑을 보면 한옥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나무나 벽돌 등과 같은 재료를 가지고 탑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중국 전역에는 목탑과 전탑이 세워졌고 지금도 중국에 가면 곳곳에서 이 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목탑은 집과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예를 한국에서 찾으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물론 황룡사 9층 목탑 등 기록에는 대단히 많이 남아 있지만, 현재는 보은 법주사에 있는 팔상전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탑을 보면 꼭 집처럼 생겼죠? 그래서 법당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탑입니다. 탑과 법당이 다른 것은 탑에는 붓다의 사리를 모셨고 법당에는 불상을 모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목탑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목탑은 아무래도 화재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탑의 재료로서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했던 것은 벽돌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가면 지금도 엄청나게 큰 전탑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전통은 우리나라에도 전달되었는데 한국인들이 탑의 재료로서 가장 선호한 것은 벽돌이 아니라 돌이었습니다. 물론 전탑을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안동이나 의성 같은 경북지방에는 전탑이 꽤 발견됩니다. 그리고 중국의 예를 따라 목탑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두 전통은 한국에서는 결국 석탑으로 귀결됩니다. 그 귀결의 절정이 바로 이 석가탑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입니다. 물론 이 석가탑은 단번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약 100년간의 실험 끝에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황룡사 9층 목탑 모형. <출처 : Rennles (a flickr user)>


여러 실험을 거쳐 목탑이나 전탑의 흔적이 남은 석탑으로 발전해
 
한국의 탑은 석가탑에서 절정을 이뤘다.
<출처 : 양병주(http://www.zenphoto.kr/)>

그래서 석탑에는 목탑이나 전탑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굳이 목탑이나 전탑을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석탑을 돌로 만든 집으로 생각하고 그 흔적을 보면 되겠습니다. 그것을 보기 위해 잠깐 탑의 구조에 대해서 보아야 하겠습니다. 석탑은 언뜻 보면 아주 단순하게 보이지만 세부로 들어가면 대단히 복잡한 부분으로 되어 있고 그 부분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가령 상륜부만 해도 거의 10개나 되는 부분으로 되어 있고 각각 ‘노반’이니 ‘복발’이니 하는 아주 어려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런 것들을 모두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아주 간단하게만 보지요.

탑은 크게 보면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기단부와 탑신부인데 이것을 구별하려면 집의 지붕에 해당하는 ‘옥개석’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됩니다. 옥개석(지붕)이 있는 것이 탑신, 즉 탑의 몸체이지요. 우리가 ‘3층탑’이다 ‘5층탑’이다 하는 것은 이 탑신의 숫자를 가지고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사리는 바로 이 탑신에 모셔지게 됩니다. 반면 기단은 이런 것 없이 그냥 네모 형의 돌만 있을 뿐입니다.

집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바로 이 탑신부에서입니다. 여기에는 우선 집처럼 지붕이 있지요? 그리고 ‘옥개받침’이라 불리는 처마가 있습니다. 이 처마는 집의 그것처럼 층층으로 되어 있고, 우리 한옥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 끝이 살짝 올라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탑신의 네 귀퉁이에는 기둥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탑이 완벽한 집이 되었지요? 한국의 경우 이렇게 생긴 탑은 앞에서 말한 대로 석가탑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공예·소품·문양 - 기예 발현의 통로

동양 미학에는 유독 기예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기’를 손재주나 기계기술로 보지 않고 예술로 본다는 뜻이다. 우선 재료 각자의 질료로서의 본성에 충실해야 된다. 자연스러움의 한 가지로, 재료를 손재주의 수단이나 물욕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감정이입을 시켜, 나와 하나로 느끼라는 뜻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일체감이니, 재료의 입장에서 기획하고 다듬고 손질하라는 뜻이다.

다음으로 부재의 쓰임새에 맞게 만들라고 했다. 기능미인데, 산업화를 거치면서 공예미와 갈라져 반대편에 섰지만, 원래 전통적인 동양미학에서 기능미와 공예미는 한몸이었다.

쓰임새에 충실하게 만들면 따로 힘들여 재주를 부리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심미성이 드러나게 되는데, 공예미의 핵심이다. 재료의 자연스러움과 쓰임새의 자연스러움이 합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 기예에 이르게 된다.

기예는 ‘진정한 기교’이자 진정한 공교로움이다. 겉멋에 머무는 헛수고는 안 하느니만 못한 괜한 공교로움이다. 진정한 공교로움은 안정감이 한이 없고 기품이 끝이 없는 상태이다. 천 번의 유행과 만 번의 변덕을 뛰어넘어 내심으로 풍요로우니 편안하기 그지없는 상태이다. 잔 계산에 울고 웃는 거침을 초월한 상태이다. 그 실현이 바로 심미와 예술의 최고 경지이니 이것에 이른 상태를 자연천성(自然天成) 혹은 교탈천공(巧奪天工)이라 했다. 완벽한 자기다움에 이르러 기교를 탈피한 경계로 하늘이 만든 상태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어진 경계이다.

진정한 공교로움의 반대편에 부질없는 공교로움이 있다. 외관의 반짝거림에 취해 겉멋이 들어 쓸데없는 잔재주를 부리는 수준으로 대교약졸이라 했다. ‘큰 기교는 서툰 것과 같다’는 뜻이니 진실성이 빠진 상태이다. 기예를 ‘욕심을 일으켜 감각의 탐욕을 키우는 잔재주’로 파악하는 수준이다.

만든 물건에서 진실성이 느껴지면 곧 정심의 경계이니,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된 경지로서의 물아일체의 상태이다. 장인은 뒤로 빠지고 재료와 부재가 각자의 본성과 쓰임새에 맞게 스스로 만들어지라고 놔뒀을 때 나타날 법한 상태를 구현해낸 경지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재료와 부재를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것들에 나를 온전히 실어 완벽한 감정이입의 상태에 들어야 한다.

굳이 공교롭게 잔재주를 부릴 필요 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니, 곧 ‘물아일체(物我一體)’이다. 건축에서 기예가 발현되는 통로는 공예, 소품, 문양 셋이다. 소품은 생활의 미학이며 일상성, 살림살이, 농기구, 돌의 해학성에서 찾을 수 있다.

 
김동수 고택너무 휘어서 버려야 할 나무를 아치로 썼다. 재료의 형상에 내재된 쓰임새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힘이니, 진정한 공예의 출발점이다. 손재주가 아닌 손맛이어야 하는데, 재료의 제격을 파악해내는 힘이다.